무료공개 | Part 2. 상법수신록 제 2권 | 5. 식습관이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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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6, 2024

평생 먹는 양은 정해져 있다

선생님께서 지금까지 음덕(陰德. 남에게 알려지지 아니하게 행하는 덕행)에 대해 설명해주셨지만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진정한 음덕에 대해 좀더 쉽게 말씀해주세요.

남보쿠의 답변

진정한 음덕이란 곡식이 땅에 떨어져 있어도 그것을 줍지 아니하고 음식도 적당하다고 생각될 때 더 이상 먹지 않을 것이며 아무리 적은 일이라 할지라도 만물을 소홀히 취급하지 않으면서 매일 덕을 쌓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의미의 음덕이다. 음덕을 모르는 자는 한 톨의 곡식이 땅에 떨어진 것은 아깝다고 생각하면서 자기가 맛있다고 생각되는 음식은 한 그릇 더 먹는다. 이는 곡식 한 톨을 버리는 슬픔이 밥 한 그릇을 헛되게 낭비하는 것과 같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이다. 떨어진 곡식은 새나 닭 같은 짐승들의 먹이로 사용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한 톨은 아깝다고 생각하면서 한 그릇을 더 먹어서 무슨 이익이 있겠는가? 당신이 포식하는 동안 다른 사람은 그만큼 굶주려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야 어찌 하늘의 복과 덕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 과식으로 되려 병을 얻어 몸을 망칠 뿐이다. 이런 부류에 속하는 사람은 명덕을 손상시키는 자들로 자기 분수를 모른다고 말할 수 있다. 하늘은 식록이 없는 사람은 처음부터 태어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과식이나 폭식으로 자기의 식록을 다 먹어버리면 죽음을 통해 데려간다. 생명이 있는 곳에는 음식이 있고 음식이 없으면 그 생명은 죽게 된다. 

한 끼를 헛되이 하면 그것이 비록 작다 하더라도 천명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따라서 대식, 폭식하는 자는 결국 스스로 자기 덕을 손상시킨다. 이것을 속된 말로 눈뜬 봉사라고도 한다. 마음의 눈이 멀게 되면 밝음을 알 수 없고 눈 밝은 스승도 우물에 빠진다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덕을 쌓아라

선생님께서는 많이 먹는 것에 대해 과할 정도로 까다롭게 말씀하시는데 초대받아 간 자리에 대접하는 음식을 적게 먹는 것은 예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이 때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남보쿠의 답변

그래도 음식을 절제해서 적게 먹는 것이 좋다. 손님으로 가서 밥상에 여러 음식이 나오는데 그 음식을 안 먹으면 버릴 것이라고 황송하게 생각해서 억지로 참고 많이 먹는 것은 잘못이다. 먹는 만큼 뱃속에 들어가서 전부 똥으로 변하는 것도 모르고 마음 아파하는 것은 잘못이다. 진실한 사람은 가능한 절제해서 적게 먹고 버리게 한다. 이것이 그 날의 음덕이고 자비인 것이다. 버릴 때는 다른 생명 있는 짐승들을 먹이게 하는 것이 되지만 똥은 다른 생명을 양육할 수 없다. 

얼핏 보기에는 음식을 소홀히 하는 것 같이 보이지만 천지만물이 공존, 공생할 수 있기 때문에 사람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음덕이다. 베푸는 것을 덕이라고 하고 그 결과 하늘로부터 되돌려 받는 것을 득이라고 한다. 결국 베푸는 것이 얻는 것의 근본인 동시에 이익이 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한 숟갈의 음식이라 할지라도 그리고 배가 약간 고프다 할지라도 음식을 헌납하여 시주하는 것이 천지에 음덕을 쌓는 일이 된다. 대식, 폭식하면 모두 똥으로 변하기 때문에 당신의 덕이 그만큼 소진되고 그걸로 끝이 되므로 출세할 수 없다. 결국 이와 같이 해서 천명을 손상시키기 때문에 병들고 가난해져서 고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람이 음덕을 쌓게 되면 만년에 분명히 깨달을 수 있는 하늘의 인과응보가 돌아온다.

덕은 쌓는 것이지 주어지는 게 아니다

점쟁이가 저는 굴러 넘어져 죽는 상이라고 합니다. 심히 걱정이 되고 신경이 쓰입니다. 정말로 객사하는 상인가요?

남보쿠의 답변

사람이 객사하는 것은 자기 자신에게 원인이 있는 것이지 절대 관상하고는 관련이 없다. 더욱이 굴러 넘어져 죽는 것은 사람뿐만 아니라 만물에게도 있다. 따라서 조심성이 없고 만물을 소홀히 취급하면 자연히 그것과 인연을 맺게 되어 자신도 고생하면서 객사할 수 있다. 이런 것을 전사(轉死)라고 한다. 

예를 들어 초목은 불에 타서 재가 되어 대자연의 흙으로 돌아가는 것을 보고 성불했다고 했다. 이 경우는 마지막이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반대로 초목을 소홀히 취급하고 더럽다고 아무 데나 버리면 좀처럼 흙으로 돌아갈 수 없고 썩어 없어지면 본래의 상태로 되돌아가기 힘들다. 이런 것을 초목의 전사라고 한다. 불행한 종말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따라서 더럽혀진 초목을 깨끗이 돌봐 주고 말라죽으면 정성스럽게 불에 태워 대자연의 흙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재로 만드는 것을 음덕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심성을 가진 사람은 객사의 상이라 하더라도 이것을 면하게 되고 노후도 편하다. 음식은 심지어 푸른 풀까지도 사람이 먹고 똥이 되어 대자연의 흙으로 돌아가는 성불이다. 

이것을 소홀히 취급하는 자는 해와 달을 소홀히 여기게 되고 천리에 맞지 않기 때문에 늙어서 큰 고생을 하고 굶주림으로 죽거나 객사, 전사하는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만물의 덕을 알고 매일 좋은 일을 하여 음덕을 쌓아 나가는 자는 만년에 덕자(德者)도 될 수 있다. 세상에는 덕이 많은 사람이 많다 해도 날 때부터 덕을 갖고 태어난 사람은 없고 모든 덕은 자기가 쌓은 덕이지 자연의 덕이 아니다. 자연의 덕을 가져서 천하의 덕을 자기가 스스로 행하므로 갖추어지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들은 그런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자기에게는 덕이 없다고 하면서 하늘을 원망하고 신세타령하는 자가 많다. 입이 화근이다. 그렇게 하면 갖고 있던 덕도 차차 없어지기 시작하여 나중에는 조상들의 덕까지도 잃게 된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것으로 의식주 세 가지가 있다. 이것은 발이 세 개 달린 솥과도 같아서 복, 재산, 장수가 스스로 갖추어져서 자기에게는 가까운 친족과 같다. 그러나 매사에 신중하지 못한 자는 교만에 빠져 친족들을 무시하고 즉 의식주의 중요함을 망각하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게 되어 나중에는 빈궁하고 재난을 당하기 마련이다. 이렇게 되면 친족격인 가업이 당신을 따른다고 해도 이것을 멀리하게 되고 말도 걸지 않고 도망치게 된다. 또 다른 친족격인 검소한 식사도 매일 당신을 양육하려고 해도 밥상을 향해 욕설을 퍼부으며 도망가곤 한다.

또한 유복한 친족이 검소한 생활을 할 것을 간하여도 그것을 무시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검소한 식사를 하는 신하와 미식의 신하를 좌우에 데리고 유곽에 가서 검소한 식사를 하는 신하는 뒤에 두고 미식의 신하와 어울려서 기생들과 함께 방탕한 생활을 하면 이것들이 거만해져서 중한 병에 걸리게 되고 본심을 가진 당신을 포박하게 되며 나아가서 빈궁단명의 일생을 보내게 된다. 

또한 말년에는 누더기 옷을 걸치고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는 신세가 되어 선조들의 명예에 먹칠하는 꼴이다. 

악은 자기가 자기를 공격하는 것

사람은 성선(性善. 사람의 본성은 선척적으로 착하나 나쁜 환경이나 물욕으로 악하게 된다는 학설.)이라고 하지만 태어나자마자 먹는 것을 알고 젖을 먹는데 이것은 악(惡)이 아닙니까? 진정한 의미의 성선이라면 태어나도 먹는 것을 좋아하지 않고 절제하며 그저 초목처럼 대자연의 식(食)을 섭취하는 것이 성선이 아닙니까? 관상법에도 성의 선악이 있습니까?

남보쿠의 답변

사람이 태어나자마자 먹는 것은 초목이 뿌리에서 물을 빨아 올리는 것과 같다. 비록 꽃을 꺾어 물에 꽃아 두면 자연히 물을 빨아들여 꽃을 피운다. 이렇게 보면 동물이나 식물이 먹는다는 것은 살아 있는 생물의 타고난 천성이지 선악은 아니다. 또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심신을 양생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검소하게 식사하는 것을 싫어하지 않고 대자연의 음식을 먹는 것은 바로 성선의 음식을 먹는 것이다. 

또 미식을 즐기는 것을 자기 의식에 따라 먹는다고 해서 의식이라고 하고 또 식식(識食)이라고도 부른다. 이런 것들은 모두 성선을 망하게 하는 음식으로 악식이다. 악이라고 하는 것은 모름지기 자기가 자기를 공격하는 어리석은 짓이다. 

먼저 음식으로 시작해서 집안의 모든 법도를 무시하고 자기 집안을 망하게 하고 마지막에는 몸과 마음도 못쓰게 만든다. 그래서 나의 관상법에는 오로지 음식을 절제하고 삼가하는 것을 가장 중요시하고 있는 것이다. 

변하지 않는 게 없다는 건 변하지 않는다

선생님께서 심리는 묘법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무엇이 묘(妙)며, 무엇이 법(法)입니까?

남보쿠의 답변

만물 모두가 묘법이 아닌 것이 없다. 또한 상이 아닌 것도 없다. 상에는 유상과 무상 두 가지가 있는데 무상은 모양이 없다고 말하여도 그 전체상은 분명히 있다. 이것을 미묘(微妙)하다고 말한다. 즉 마음으로는 있어도 말로 간단히 표현할 수 없다. 또 유형은 모양이 있고 모양이 있는 것은 법이고 우리의 몸도 그러하다. 법이 있는 것은 차차 없어져 간다. 이런 것이 법의 길이고 상법의 길이다. 성은 모두가 다 미묘한 데까지 와서 분명한 법형이 생긴다. 자기 자신의 심신은 모두가 다 묘법이고 천지에 골고루 충만해 있다. 나는 하루라도 천지의 묘를 받지 않는 날이 없고 그런 다음 천하의 법을 사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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